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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학자가 보는 세상](13) 발달장애의 진단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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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아이행복 댓글 0건 조회 3,421회 작성일 08-12-2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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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응성 애착장애’ 한국에 왜 많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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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폐증을 앓는 소년을 소재로 한 영화 ‘말아톤’의 실제 모델인 배형진군이 한 마라톤 대회에서 뛰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람들은 내가 요즘 발달장애에 관한 연구를 한다고 하면 보통 의아해한다. 그렇기도 한 것이, 발달장애란 일반적으로 심리학이나 아동학, 또는 정신의학에서 연구하는 분야로 인식되고 있는데 반해 문화인류학은 오지의 문화적 관행 또는 잃어버린 문명을 공부하는 분야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문화인류학은 특정 지역문화의 특수성을 연구하는 분야다. 하지만 그 특수성에는 사회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의미·가치·행위체계와 규범, 그리고 제도가 포함된다. 장애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문화의 테두리 내에서 규정되는 것이다. 장애가 장애로 성립되려면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이 문화적으로 규정되고 언어화돼야 한다. 그런데 문화권마다 장애를 이해하는 방식은 다르다. 그래서 그에 대한 사회적 반응과 치료방법도 문화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발달장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자폐아동인 동훈이와 그 가족을 알게 되면서부터이다. 동훈이는 2세 때부터 소아정신과를 드나들었다. 처음에 문제를 느낀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갔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 또 다른 곳에서는 너무 어려서 진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무진단, 또 엄마와 애착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서 발달이 늦다는 반응성 애착장애 진단까지 병원마다 제각각 다른 진단이 내려졌다. 사랑과 관심으로 잘 보살피면 아이가 나아질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 동훈 엄마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적으로 아이만 돌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동훈이의 상태는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동훈이는 결국 8세가 돼서야 자폐진단을 받았다.

    자폐증은 사회성의 결여와 언어적 또는 비언어적 의사소통 문제, 제한되고 반복적인 양상을 보이는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3가지의 핵심 증상과 인지기능·신경행동학적 문제가 복합된 발달장애이다. 한국에서 자폐증은 얼마전 개봉된 영화 ‘말아톤’을 통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영화는 모든 자폐증 환자는 영화에 나오는 초원이와 같다는 잘못된 인식을 초래하기도 했다. 자폐증은 유사한 증상이 일관되게 나타나지 않는다. 매우 가벼운 증상부터 중한 것까지 그 강도도 다양한 까닭에 일종의 스펙트럼을 구성한다고 해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라고도 한다.

    발달장애, 특히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경우 아직 소아정신의학이라는 분야가 생긴지 오래되지 않았다. 또 어린 아이들에 대한 정밀 검사가 어려워서 다양한 진단, 그리고 때로는 오진도 내려지는 것이 흔하다. 소아 정신의학이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의 경우에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진단되기 시작한지 약 15년밖에 안 되었다. 한국에서는 동훈이의 경우처럼 반응성 애착장애 진단과 자폐 스펙트럼 장애진단이 자주 혼동되어서 내려진다.

    흥미로운 것은 유독 한국에서만 반응성 애착장애 진단이 많이 내려진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반응성 애착장애 진단이 내려지는 경우가 거의 없고, 진단기준이 애매하다고 해서 이 진단을 아예 폐기처분하자는 정신의학계의 움직임도 있다. 굳이 이 진단이 내려지는 경우는 아동이 심한 학대를 받았다는 증거가 있어야만 한다. 어떤 한국인 의사는 미국의 학회에 참석했을 때 한국에서만 유독 높게 나타나는 반응성 애착장애의 발생률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당혹감을 느꼈다고 한다. 한 미국인이 한국문화는 아동을 학대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문화냐고 질문했던 것이다. 지나친 과보호와 교육열은 분명히 이 시대에 발견되는 우리 문화의 일부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학대’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에서만 이런 진단이 그토록 많이 내려지는 것일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답은 많은 부모와 전문가들이 아동에게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내리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낙인을 찍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아이의 부모들이 자폐증이란 진단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거부한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자폐아동들에게 그보다는 조금 덜 심각하고 치유할 수 있을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반응성 애착장애, 또는 정서장애라는 진단을 많이 내린다.

    부모의 경우 반응성 애착장애가 애정결핍 또는 관심의 부족 때문에 나타난 병이라면, 사랑을 더 줘서 치유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그동안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또 다른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이 진단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문제가 선천적이면 고칠 길도 많지 않고 또 대대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후천적이라면 적합한 환경과 조건만 충족되면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집단적 자기상상의 낙관론이 깔려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여전히 한국에서 ‘엄마가 자식을 만든다’는 인식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책임론에서도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자녀의 대학입시와 성공적인 취직을 책임져야만 하는 현대판 맹모(孟母) 이데올로기도 같은 맥락이다. 자폐아동처럼 학습에 어려움이 있거나 문제행동을 보이는 경우 그 원인을 엄마의 잘못된 양육방식과 애정결핍 등, 한 마디로 엄마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발달장애를 연구하면서 나는 반응성 애착장애 진단을 받고 엄마가 좌절하는 경우를 흔히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 때문에 우울증, 대인기피증에 걸리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부부간의 불화가 너무 심해서 이혼하는 경우도 있고, 엄마가 알코올 중독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반응성 애착장애 진단의 문제점은 엄마에게 주는 충격에만 있지 않다. 가장 큰 문제점은 조기진단을 받지 못해서 아이가 어릴 때 받아야 효과가 있는 치료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자폐아로 태어날 거라면 지금이 적기(適期)”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치료기법이 발달해 있고 밝은 전망을 갖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위와 같은 이유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이 적게 내려진다. 게다가 이미 치료를 시작할 때에는 아이들이 너무 커버려서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는 다시 악순환으로 이어져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사회적 통념만 강화시키게 된다.

    현대의학의 진단기준은 분명히 과학적인 근거를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따라, 전문가들마다, 또는 사회문화적인 환경마다 차이가 존재한다. 글로벌 시대에 의학지식의 유통도 빨라졌는데, 유독 문화적 특수성 때문에 변하지 않는 진단체계들이 있다. 다시 그 과학적 근거를 따지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발달장애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시선이 변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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